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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고리 #3] 한 명의 문어와 한 명의 인간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으로 살펴본 문어의 아름다운 생명력

김민선 | 기사입력 2022/01/20 [08:01]

[연결고리 #3] 한 명의 문어와 한 명의 인간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으로 살펴본 문어의 아름다운 생명력

김민선 | 입력 : 2022/01/20 [08:01]

▲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포스터  © 넷플릭스

기사 요약

1.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속 위기 상황에서 영리한 전략을 구사하는 문어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2. 문어가 감정이나 고통을 느끼는 '지각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가시화되면서 동물복지법 개정과 문어 양식장 반대까지 이어진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다.

3. 하지만 인간이 임의로 그어 놓은 종 차별적 기준에 의해 특정 생명은 존중받을 자격이 충분하고, 다른 생명은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이 현실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4. 인간 종과 감정을 나눌 수 있고, 인간 종처럼 지능이 뛰어난 문어의 능력이 아니라, 그저 살아있는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충분히 누리는 그의 생명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오랫동안 일에 치여 살아온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자신의 고향,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위치한 칼라하리 해초 숲을 찾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존재를 만났다. 해초 숲에서 어떤 존재를 발견한 순간, 그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 존재는 수십 개의 조개껍데기를 끌어모아 그 안에 온 몸을 숨긴 채 숨죽이고 있었다. 정체를 알기 어려울뿐더러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영원 같던 정적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 순간, 조개껍데기들을 벗어던진 미지의 생명체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문어였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다이버인 크레이그 포스터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의 한 장면이다. 문어는 그의 천적인 상어를 따돌리기 위해 빨판을 사용해 조개껍데기에 몸을 감추었던 것이다. 다큐멘터리 후반부에 문어가 끈질긴 눈속임으로 상어의 공격을 정면 돌파하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위기 상황에서 영리한 전략을 구사하는 문어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문어의 지능이 주목받은 이 다큐멘터리 덕분이었을까. <나의 문어 선생님>이 공개된 지 1년 여만에, 2021년 11월 영국 정부는 동물복지법안 대상에 기존 척추동물에서 문어를 확대 적용할 것이라 발표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은 문어, 오징어 등 두족류와 바닷가재, 게 등 십각류의 지각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300여 편의 과학 연구 결과를 검토했다. 두족류와 십각류가 복잡한 중추신경계를 갖고 있으므로 ‘지각 있는 존재(sentient being)’라고 밝혔다.

 

‘지각 있는 존재’인 문어를 옹호하는 주장은 더욱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영국 정부에서 동물복지법안 개정안을 논의한 지 한 달 후, 수산물 다국적 기업 누에바 페스카노바(NP)가 세계 최초로 상업적 문어 양식장을 설립하여 2023년부터는 양식 문어를 판매할 것이라 발표했다. 이에 여러 동물복지단체와 연구단체들은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를 척박한 양식 탱크에서 키우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문어 양식을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동물복지 단체 ‘CIWF(Compassion in World Farming)’의 엘레나 라라 박사는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계획이 잘못됐다는 이유를 이해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문어가 감정이나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가시화되면서 동물복지법 개정과 문어 양식장 반대까지 이어진 모습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이 문어를 옹호하기 시작한 근거가 인간과의 유사성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한계가 있다. 문어가 ‘지각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문어를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는 여전히 인간 중심적이다. 문어가 인간처럼 감정과 고통을 느끼고, 호기심이 있으며, 뛰어난 전략을 구사할 만큼 지능이 높기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인 것이 아니다. 그저 한 생명으로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운이 좋게도 뛰어난 지각력을 인간에게 인정받은 문어만이 존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과학 연구 결과 덕분에 능력을 증명하게 된 두족류와 십각류만이 영국 정부의 동물복지법안 개정안 논의에 포함되었다. 해당 종에 포함되지 못한 수많은 존재들이 떠오른다. 인간이 임의로 그어 놓은 종 차별적 기준에 의해 특정 생명은 존중받을 자격이 충분하고, 다른 생명은 무가치하게 여겨지는 이 현실에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인간과 비슷한 문어의 여러 능력이 아니다. 동물을 피상적으로 담아내는 과거의 다큐멘터리들과는 달리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는 문어라는 종의 특성에 대해 해석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문어에게 인간의 감정이나 판단을 투영하지 않는 대신, 그 한 명*의 문어가 지니는 시선 그대로를 담기 위해 애쓴다. 그 한 명의 문어가 영위하는 삶의 생명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큐멘터리 속 그 문어가 여느 인간과 다름없이 한 생명으로서 이 지구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  ‘마리’는 ‘짐승이나 물고기, 벌레 따위를 세는 단위’이다. 비인간 동물에게만 쓰는 용어가 종 차별적이기에 인간의 수를 셀 때 붙이는 단위 ‘명’을 사용하였다.

 

▲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 포스터  © 넷플릭스

 

인간 종과 감정을 나눌 수 있고, 인간 종처럼 지능이 뛰어난 문어의 능력이 아니라, 그저 살아있는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충분히 누리는 그의 생명력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나아가 인간과 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도축장에서, 동물원에서, 수족관에서, 실험실에서 잔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무수한 동물들을 떠올려야 한다. <나의 문어 선생님>은 더 이상 문어는 못 먹겠다는 잠깐의 죄책감을 넘어 더 많은 동물들의 현실을 곱씹어 볼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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