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플타의책장' 독서단이 환경책을 읽고 직접 작성한 글로, 플래닛타임즈가 선별한 도서 위주로 독서단에게 도서를 제공하여 가감없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 이 넓은 지구상 곳곳을 지키고 맡은 바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며 우리에게 견고하고 풍요로운 삶을 선물하는 지극히 작은 곤충 꿀벌에 관해 토니 디알리아가 들려주는 달달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맬리스 린드스트럼이 채색 콜라주 기법으로 예쁘게 담아낸 그림책
어릴 적 학교가 끝나면 동네 아이들과 함께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핀 들을 지나 하늘을 가릴 만큼 가지가 무성한 아카시아 나무 터널을 통과해 집까지 걸어오곤 했는데, 어느 날 색색이 핀 코스모스가 예뻐 그 사이를 비집고 걸어 들어가다 벌에 쏘이는 일이 있었다.
작은 벌 한 마리가 8살 아이에게 준 큰 고통으로 아이는 텔레비전 속에만 있는 사자 호랑이보다 손톱만 한 이 곤충이 더 위험하고 강해 보였고 벌은 한동안 공포이자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 시절 공포의 벌 떼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농촌 마을에 흔한 과수원에도, 과실나무와 관상용 나무의 경계가 없는 우리 집 화단에도, 마을 곳곳에 핀 이름 모를 들꽃 주변에도 항상 윙윙하는 경비병들의 으름장 소리가 들려서 꽃이 있는 곳이면 늘 경계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불안해하던 기억이 남아있다.
30년이 더 지난 지금은 벌이 귀해졌다는 뉴스가 종종 들린다. 언젠가부터 꽃길을 걸어도 벌을 신경 쓰거나 예민하게 주위를 살피지 않게 된 것 같은데 그 많던 벌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오늘 딸 아이가 들고 온 그림책에서 벌들을 다시 만났다.
『작은 꿀벌 한 마리가』 책 소개 자료
"여기저기 꽃가루를 퍼뜨리고, 모든 꽃에게 인사했어요. 정원의 가루받이를 도맡았죠." (본문 중)
내 기억 속에 벌들은 그저 꽃을 지키는 잔인한 경비병이었고 꽃과 농작물을 책임지는 성실한 일꾼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을 키우며 다시 만난 벌들은 지구 생태계를 유지시키는 연결고리 이자 울타리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호주 출신으로 건강한 삶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 토니 디알리아 작가가 쓰고 앨리스 린드스트럼이 종이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하여 추억 속의 꽃과 벌을 책 속에 담아 그림이 예쁜 『작은 꿀벌 한 마리가』라는 제목의 책은 그림 속에 더 깊고 예쁜 이야기를 담아 우리 집까지 왔다.
책을 열었을 때 저와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색감이었는데 24색 크레파스에서 보던 진초록, 연초록의 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곳곳에 자리 잡은 수십 가지의 초록 들이 책 위에서 발랄하게 흔들렸다. 이 초록이 돋보일 수 있는 이유는 형형색색 저마다의 빛을 뿜어내는 꽃들 때문이었고 이 꽃들이 돋보이는 것은 역시 꽃을 떠받드는 자연의 초록빛들 때문이었다 새삼 매일 만나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풍경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벌의 날갯짓에 형형색색 만물이 춤을 추는 듯 그림 작가의 콜라주 기법은 평면의 그림책이 3D가 되고 4D가 되는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그 사이를 이 책의 주인공인 작은 꿀벌이 날아다니며 노란 가루를 날린다 모든 꽃들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면서 말이다
들꽃을 피우고 과일과 채소를 키워낸 벌이라는 작은 생명체는 꽃가루 전달의 임무를 받은 배달꾼이라는 역할에 한정 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지구라는 대작과 함께 완성한 완벽한 계획의 일부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이 작고 소중한 아이가 지구의 기후 변화로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 페이지 이 책을 옮긴 김여진 번역가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IPCC (유엔 산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서는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벌들이 10년 후에는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10년 뒤 닥칠 이별의 아쉬움에 한숨을 내뱉기 전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벌들이 사라지면 꽃과 열매가 사라지고 그것들과 공존하는 곤충과 동물들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인간 과에 속한 동물이니 나의 후손들도 멸종이라는 결괏값 속에서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불편한 가정에 닿게 된다.
『작은 꿀벌 한 마리가』 책 소개 자료
이 지구의 생태계는 단순해 보이지만 나름의 규칙 속에 쌓여 있는 젠가와도 같다
한두 개 빠지는 것쯤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당장은 덮어 버릴 수 있겠지만 다음번에 빠질 작은 막대가 인간이 되는 순간도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미물이라 불리는 작은 친구들이 이뤄내고 있는 대업들이 중단되지 않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 질문에 8살 아이는 이제부터 빨대를 쓰지 않겠다 선언했고 10살 아이는 음식을 남기지 않고 분리수거를 잘 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이 아이들이 약속한 빨대 몇 개가 당장 지구를 회복되지는 않겠지만 더 큰 희망은 이 아이들의 선언과 다짐에 있다. 열심과 열정의 온도가 올라갈수록 지구의 온도는 더디 오르다가 어느 순간 멈추고, 우리의 노력과 과학의 발전이 더해져 다시 가장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을 되찾게 되기를 책 속에 핀 예쁜 꽃들을 보며 기대하고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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